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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과 평화에 관한 단상.
  • 나형수 논설위원
  • 등록 2024-06-10 19:55:59
  • 수정 2024-06-30 21:4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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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연평도 안보체험단’의 일원으로 안보 실상의 이모저모를 둘러보는 동안, 내내 머리에서 떠나지 않는 사념은 전쟁과 평화에 관한 것이었다.


투데이스타 특별기고
나형수 (방송통신위원회 사무총장 역임)

                     사진 :  왼쪽 첫번째 나형수 위원



                                        전쟁과 평화에 관한 단상. 

 

 ‘연평도 안보체험단’의 일원으로 안보 실상의 이모저모를 둘러보는 동안, 내내 머리에서 떠나지 않는 사념은 전쟁과 평화에 관한 것이었다. 인류 역사에서 왜 전쟁은 계속되는 것일까? 영구 평화란 허황한 이상에 지나지 않는 것일까? 우크라이나 어린이들은 얼마나 고통스러울까? 팔레스타인 어린이들은 빵이나마 먹고 살까? 사념은 계속되었으나 별다른 결론에 도달하지는 못했다. 

 국민학교 5학년 때, 6,25 동란을 겪은 나는 길거리에 널브러진 시체도 보았고, 피난길에 너무 배가 고파 가지고 가던 마늘장아찌를 어른들 눈을 피해 먹다가 배가 아파 죽을 지경에 달했던 경험도 겪었다. 그때 겪었던 이런저런 고생과 아픔은 이제는 모두 먼 기억 속에서 가물가물 사라져가고 오히려 그때의 추억이 아름다운 그리움이 되어 때때로 머리를 쳐드는 것은 무슨 조화인지 모를 일이다. 어릴 적 고통과 아픔은 세월의 풍화작용을 거치며 아름다움과 그리움으로 바뀌는 것일까? 

 그러나 이번 연평도에서 보고 들은 안보 상황은 옛날이야기도 아니고 먼 나라 일도 아니었다. 3Km의 바다를 사이에 두고 남북은 지금 대치하고 있고 연평도 포격사건은 불과 14년 전에 벌어진 일이었다. 

       사진촬영 : 2024.6월 9일. 오전 11시  - 연평도에서 3km 직선 거리에 있는 섬 '갈도' (북한)

 

오늘도 북한 정권은 쓰레기 풍선을 날리고 있고 남한의 군부대는 경계태세에 들어가 있다. 지금이라도 연평도 포격사건은 재현될 수 있는 상황인 것이다. 이러한 한국의 안보 상황은 지극히 사실적이고 실재적인 현실임을 다시 한번 실감하면서 연평도의 이곳저곳을 둘러본 끝에 나는 결국 결론에 도달했다. “힘을 바탕으로 한 평화 모색.” 아무리 생각해도 이 방안만이 가장 직관적이며 타당한 방안인 듯하다. 

 러시아의 문호 톨스토이는 소설 ‘전쟁과 평화’에서 나폴레옹의 침공을 맞은 러시아 사람들을 그리면서 “개인은 역사의 한 부분이면서 동시에 역사의 주체가 된다.”라고 썼다. 또 주인공의 한 사람인 피에르가 죽는 장면에서 “자유, 인간에게 천부적으로 주어진 충만하고 절대적인 자유가 피에르의 영혼을 가득 채웠다. 그리고 피에르는 눈을 감았다.”라고 묘사했다. 대충 인용했지만, 톨스토이는 이 소설을 통해 “전쟁과 평화”에 관한 인간의 대서사시를 그려냈다. 우리는 비록 장대한 ‘전쟁과 평화’를 그릴 수는 없지만 연평도 포격사건을 겪은 개인들에 관한 안타깝고 가슴 저린 이야기를 전할 수는 있다. 

                                                     이범창 천도교 종무원장(현)

연평도 안보교육장에서 우리는 2010년 11월 23일의 연평도 포격사건 이야기를 들었다. 수더분한 아주머니 해설사는 당시의 이야기를 잔잔하지만 너무나도 생생하게 들려주었다. 자신이 직접 겪은 체험인지라 그리 절실했을 것이다. 북한의 포탄을 맞은 민가 3채를 그날 모습 그대로 보존했는데 민가의 블록 시멘트 벽은 처참하게 무너져 내렸고 북한의 정사정 포탄(불발탄) 1발은 날아와 마당 가운데 박힌 그대로 남아 있다. 위가 깨지고 아래는 땅에 박힌 채 갈라진 1m 높이 포탄은 망령처럼 그날의 참상을 증언하고 있었다. 해설사의 목소리는 때론 높게 때론 낮게 떨렸다. 깨지고 부서진 가재도구를 설명할 때였다. 깨진 냄비, 밥통, 곤로, 전자레인지, 심지어 요강까지 전시해 두었는데 아주머니 해설사는 분을 삭이는 것일까, 설명하는 목소리를 가늘게 떨었다.

 해설사는 당시에 찍힌 사진들도 설명했는데 한 사진에 나온 소년이 자신의 아들이란다. 해설이 다 끝난 다음에 나는 살짝 그 아들의 근황을 물었다. 군을 제대하고 나와 꽃게잡이를 하는 아버지를 지금 돕고 있단다. 14년 전의 그 소년은 지금 꽃게잡이 어선에서 구릿빛 근육에 땀방울을 흘리며 그물을 걷고 있을 것이다. 그때, 당시 북한의 포탄 2천 4백여 발은 대부분 민간 거주 지역에 떨어져 일반 주민들의 삶을 엉망으로 부셔 놓았다. 그때의 공포, 트라우마를 견디지 못한, 수많은 주민들이 삶의 터전을 버리고 연평도를 떠났다. 그러나 반 이상의 주민들은 연평도로 되돌아와, 지금 2천여 주민들이 연평도를 가꾸고 있다. 

 마음이 깨끗하고 수더분한 사람들의 삶이란 이런 것이다. 비록 언제 또다시 북한의 포탄이 날아올지 모르는 두려움이 머리 뒤 끝에 남아 있지만 그래도 고향에서 살아야 한다는 숙명 같은 것, 고향을 가꾸어야 한다는 사명 같은 것, 이런 것이 마음 선한 사람들의 애국심이 아니겠는가? 이런 아름다운 사람들에게 어찌 복이 오지 않겠는가? 연평도여! 연평도 사람들이어! 복 있으라! 

 연평도에는 안보 자원만 있는 것이 아니다. 관광 자원도 의외로 널려 있다. 모두 걸어서 다닐 수 있어 조금만 발품을 팔면 깨끗한 자연 풍광을 가슴에 담을 수 있다. 구리동 해수욕장, 가래칠기 해변, 조기역사관, 충민사. 날 좋은 날은 꼭 서쪽을 향해 일몰을 보아야 한다. 신기한 것은 사람들이 꽤 몰리는 곳에도 쓰레기가 전혀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주택지 고샅에도 버려진 쓰레기가 거의 없다. 주민들이 열심히 청소하는 탓일까? 물어보지는 않았으나 꼭 그렇지는 않은 것 같다. 그만큼 사람이 많지 않고 따라서 자연 훼손이 덜한 까닭인 듯하다. 연평도 어디를 가도 싱싱한 숲과 풀을 만날 수 있다. 나는 가는 곳마다 방가지똥이 자라고 있는 것을 보았다. 20여년 전 나를 암에서 살려낸 방가지똥이 싱싱하게 자라고 있는 섬, 여기는 연평도입니다. 

 이쯤에서 연평도 이야기를 끝낼까 했으나 결코 그럴 수 없는 사연이 남아 있다. 꽃게 이야기를 빼먹는다면 나는 정말 머리 나쁜 사람일 것이다. 저녁 식사를 가는 길에 우리의 인솔자 박교관은 “꽃게를 배 터지게 자시기 바랍니다.”라고 몇 번을 강조했다. 그러나 나는 최근 뱃살을 줄이기 위해 나름의 다이어트를 하는 중이라 저 말에 현혹되지 않으리라 굳게 다짐을 했다. 허름한 식당에서, 인심 좋게 생긴 주인 아주머니가 큰 쟁반에 삶은 꽃게를 수북이 담아낸다. 한 사람에 3마리씩 일단 배당인데 원하는대로 공급하겠다고 선언했다. 나는 꽃게를 집에서도 가끔 먹어본 터라 심드렁하게 젓가락을 들기 시작했다. 

 아 그런데 이 웬일인가! 그날 밤, 나는 그야말로 배가 터지지 않은 것이 다행일 정도로 꽃게를 먹었다. 연평도 꽃게가 이렇게 맛있는 것인 줄 평생 처음 알았다. 정말 맛있었다! 더 이상 먹을 수 없어 뒤로 물러 앉는 때, 꽃게탕이 나왔다. 같은 식탁의 한 사람이 국물을 떠먹더니 “와, 이 맛이라니!” 감탄에 감탄을 거듭한다. 나도 어쩔 수 없어 한 숟갈 뜬 뒤부터 다시 머리를 박고 대들었다. 나는 감히 선언한다. 연평도 꽃게 맛을 보지 않은 사람은 음식을 논하지 말아야 한다. 

       연평해전 당시 투입되던 참수리호 앞에서 (안보체험단체 협의회 회원 일행)


 우리 안보 체험단은 다행히 꽃게 맛을 보기 전에 평화추모공원에 있는 연평도 포격전 전몰용사 위령탑에 헌화를 했다. 미리 준비해 간 화환을 14년 전에 산화한 두 해병대원의 위령탑 앞에 정중히 모시고 12명 대원 전원이 묵념과 거수경례를 올렸다. 서정우 하사와 문광욱 일병. 꽃다운 나이에 산화한 두 해병을 향해 거수 경례를 올릴 때, 나는 한 사람의 해병이 되어 비록 나이 든 사람이지만 올바른 삶을 지키리라 결심했다. 충성! 필승! 나는 속으로 가만히 외치고 있었다. 

변종욱(우측) 안보체험협의회 회장 해병대 165, 나형수 방송통신위원 사무총장역임(가운데), 이범창 천도교 종무원장(좌측)  


 나는 꽃게 맛을 보기 전에 위령탑에 헌화한 것을 매우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지나치게 맛있는 것을 먹는다는 것은 그만큼 쾌락에 젖는 일이어서 순국 영령들에게 마음을 바치는 일을 자칫 훼손할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연평도를 떠나기 전, 바다를 보면서 다시 생각했다. 맛있는 연평도 꽃게를 음미하는 일과 영령들을 기리는 일은 서로 상충되지 않을 것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삶이란 실로 다양한 것이며 복합적인 것이리라. 꽃게도 잘 먹고 영령들을 기리는 일도 열심히 하는 것이야말로 원만하고 균형된 태도가 아닐까? 아마 그럴 것 같았다. 


 떠나는 선창을 통해 “안녕 연평도!” 이별의 인사를 건넸다. 깨끗하고 아름다운 연평도. 선한 사람들이 살며 용감한 해병들이 지키는 연평도. 빨리 다시 만나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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