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데이스타 기획시리즈
25년 세월을 정선아리랑과 함께한 그들에게 '이수자' 수여가 그렇게도 어려운가?
“정선아리랑이 삶의 이정표가 된 사람들의 빛과 그림자”
정선아리랑 장터 공연의 시작(2004) 비 오는 날에도 관객과 소리꾼이 함께 어우러진 노천 공연장에서 정선아리랑은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메밀전과 막걸리를 곁들인 장터 풍경 속에서 아리랑 소리는 먼 길의 피로를 잊게 할 만큼 깊은 울림을 주었다.
정선아리랑의 매력 끊어질 듯 이어지는 독특한 가락과 9천여 수에 달하는 다양한 가사가 사람들의 삶과 이야기를 담아내며 큰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정선 오일장 활성화에 기여한 소리꾼들 김남기 선생을 비롯해 전희정, 이정순, 이정희, 배귀녀, 배연자, 장옥련, 장석배, 전재선, 이금득, 손정자, 최숙녀, 이자옥 등 많은 소리꾼들이 장터 공연을 통해 정선 오일장을 전국적인 명소로 만드는 데 큰 역할을 했다.
20년간 이어진 장터 공연의 배경 정춘경 씨는 2005년 민예총에서 받은 300만 원 지원이 전부였으며, 대부분의 소리꾼들이 재능 기부로 참여해 공연이 지속될 수 있었다고 말한다. 이들의 헌신이 없었다면 지금의 정선 오일장도 존재하기 어려웠다는 의미다.

2010년 정선5일장터 공연장은 정선아리랑의 상징적 공간이었지만, 최근에는 겉모습만 화려해지고 정작 ‘옛소리’를 제대로 전하지 못한다는 불만이 현장에서 꾸준히 나오고 있다.
현장 소리꾼들과 전문가들은 문제의 핵심을 정선아리랑축제 운영 방식과 정선아리랑 전수관의 교육 시스템에서 찾고 있다.
축제는 정선을 대표하는 큰 행사지만, 인기 가수 섭외에 의존해 관람객 수를 평가하는 방식이 반복되고 있다.
많은 예산을 투입한 중앙무대 공연이 정선아리랑 축제의 정체성과 완전히 동떨어져 있다는 비판이 거세다.
공연을 본 관객들조차 “무슨 공연인지 모르겠다”, “정선아리랑 축제와 전혀 맞지 않는다”, “국적 불명 작품 같다” 라는 혹평을 남길 정도로 기획 의도와 메시지가 불분명했다.
축제의 주역이 되어야 할 정선아리랑 소리꾼들이 중앙무대에서 중심이 아니라 ‘초대 손님’처럼 보이는 상황은 명백한 기획 실패다.
정선아리랑 축제라면, 가장 앞에 서야 할 사람은 정선아리랑을 지켜온 소리꾼들이다. 그들의 존재가 주변으로 밀려난 축제는 정선아리랑의 이름을 걸 자격이 없다.
축제의 본질을 회복하려면, 정선아리랑 소리꾼을 중심에 세우고, 지역성과 전통성을 기반으로 한 기획 역량을 대폭 강화해야 한다.
정선 고유의 문화·음식·프로그램이 빈약해 축제의 정체성이 흐려지고 있다.
매년 벚꽃 개화 시기에 정선 나전에서 열리는 토속음식축제는 정선의 고유한 맛과 문화를 보여주는 자리다.
정선에는 지역 고유의 토속 음식이 많지만, 축제 현장에는 전국 어디서나 볼 수 있는 흔한 음식들이 배치되어 있다.
정선 토속 음식 축제에서 선보이는 음식만 가져와도 충분히 매력적인데, 지역성·정선만의 맛을 살린 구성에 실패하고 있다.
축제는 음식을 팔아 수익을 내는 장사가 아니라, 정선의 맛과 멋을 대접하는 자리여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선 9개 읍·면에는 소박하고 정이 담긴 토속 음식과 문화 자원이 풍부하다.
그러나 축제는 이 자원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해 정선만의 고유한 매력을 살리지 못하고 있다.
[정선아리랑 보존회 운영 방식의 문제]
축제 현장에서 만난 정선아리랑 보존회 회원들의 모습은 정선아리랑 축제의 본래 취지와 어울리지 않는 방식으로 운영되고 있었다.
관객과 소통하며 함께 즐겨야 할 자리임에도, 몇 명만 들어갈 수 있는 작은 공간을 따로 꾸며 옛 정취를 재현하는 방식을 사용했다.
이는 축제의 개방성과 참여성을 떨어뜨리고, 정선아리랑의 정신을 제대로 전달하지 못하는 잘못된 프로그램 구성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문제의 본질
정선아리랑은 원래 사람들과 어울려 부르고 듣는 ‘공동체적 소리’인데, 축제 현장에서 오히려 관객과의 거리감을 만드는 연출이 이루어지고 있다.
결국 축제의 목적과 현장의 운영 방식이 어긋나 정선아리랑의 가치와 매력을 충분히 살리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매년 벚꽃개화기에 맞춰 정선 나전에서 열리고 있는 정선토속음식축제 현장
다음은 정선아리랑 전수관 교육 시스템을 들여다봤다.

상공에서 본 정선아리랑 전수관 전경
정선아리랑이 2012년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된 것은 9천여 수의 방대한 가사와 체계적 전승 시스템 덕분이었다.
그러나 지금의 전수관 교육 시스템은 그 명예로운 가치와는 거리가 멀다. 세계가 인정한 유산을 관리하는 기관치고는 지나치게 불투명하고 비효율적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전수관은 4개의 강습실로 나뉘어 있고, 수강생이 원하는 예능보유자를 선택할 수 있어 겉으로는 민주적이고 합리적인 시스템처럼 보인다.
하지만 실제 현장에서는 “왜 특정 강습실로만 학생이 몰리는가?”, “왜 강습실마다 소리의 폭·감정 표현이 다르게 형성되는가?” 같은 문제 제기가 끊이지 않는다.
과거에는 어느 선생에게 배웠느냐에 따라 장학생 선발에 보이지 않는 힘이 작용한다는 소문이 돌았다.
지금은 오해가 해소되었다고 하지만, 왜 특정 강습실만 유독 선호되는지 설명되지 않는 이상 불신은 완전히 사라질 수 없다.
20년 동안 정선아리랑을 배우고도 장학생 선발에서 반복적으로 배제된 사람들의 하소연은 제도적 미비 또는 특정인의 개입 가능성을 의심하게 만든다.
전수관 시스템은 수강생을 특정 강습실에 고정시키는 구조다. 이로 인해 수강생은 예능보유자들의 다양한 음색·음정·감정 표현을 고르게 경험할 기회를 잃는다.
정선아리랑은 원래 악보로 규정할 수 없는 살아 있는 소리다. 그런데 지금의 교육은 악보 중심, 예쁜 소리 중심으로 기울어 정선아리랑의 본질인 ‘삶의 감정’과 ‘현장의 맛’을 훼손하고 있다.
유네스코 등재 유산을 관리하는 기관이 불신을 키우는 구조, 감정 표현을 억누르는 교육, 특정 강습실 쏠림 현상, 장학생 선발의 불투명성 을 방치한다면, 정선아리랑의 미래는 위태롭다.
지금의 전수관 시스템은 정선아리랑의 정신과 전통을 온전히 계승하기에는 구조적으로 한계가 명확하다.
2018평창동계올림픽 홍보영상제작에 출연한 모습
정선아리랑 전수관은 네 명의 예능보유자가 각자 강습실을 운영하고, 수강생이 원하는 강습실을 선택할 수 있어 외형적으로는 민주적이고 합리적인 시스템처럼 보인다.
그러나 실제로는 강습실마다 소리의 폭·감정 표현·발성 방식이 크게 다르게 형성되는 구조적 편차가 존재한다.
이는 단순한 스타일 차이가 아니라, 전승의 일관성과 공정성을 해치는 심각한 문제다.
왜 특정 강습실에만 학생이 몰리는가? 이 질문은 수년간 현장에서 반복되어 온 의문이다.
과거에는 어느 선생에게 배웠느냐에 따라 전수 장학생 선발에 보이지 않는 힘이 작용한다는 소문이 돌았다.
지금은 오해가 해소되었다고 하지만, 강습실 쏠림 현상이 계속되는 이상, 불신은 완전히 사라질 수 없다. 전승 기관이 이런 의심을 방치한다면, 공정성은 제도적으로 보장되지 않는다는 뜻이다.
수강생이 특정 강습실에 고정되는 구조는 예능보유자들의 다양한 음색·음정·감정 표현을 경험할 기회를 원천적으로 차단한다.
정선아리랑은 원래 사람의 삶과 감정이 그대로 녹아 있는 소리, 악보로 규정할 수 없는 살아 있는 전통이다.
그런데 지금의 교육은 악보 중심, 예쁜 소리 중심으로 기울어 정선아리랑의 본질을 훼손하는 결과를 낳고 있다.
정선아리랑은 악보대로 발성하는 순간 정선아리랑이 아닌 다른 무엇이 된다.
장학생 선발 기준이 ‘예쁜 소리’에 치우친다면, 정선아리랑의 핵심인 감정·삶·현장의 맛은 사라지고 껍데기만 남는다.
이는 전승이 아니라 전통의 왜곡이며, 유네스코 등재 유산을 관리하는 기관으로서 용납될 수 없는 일이다.
20년 동안 정선아리랑을 배우고도 장학생 선발에서 반복적으로 배제된 사람들의 하소연은 제도적 미비 또는 특정인의 개입 가능성을 의심하게 만든다.
전승 기관이 이런 목소리를 외면한다면, 정선아리랑의 미래는 공정성 없는 구조 속에서 흔들릴 수밖에 없다.

갓난 아이에게 죽을 먹이고 있는 최숙녀
지금의 전수관 시스템은 불신을 키우는 구조, 감정 표현을 억누르는 교육, 특정 강습실 쏠림 현상, 장학생 선발의 불투명성 을 방치하고 있다.
이러한 구조에서는 정선아리랑의 정신과 전통을 온전히 계승할 수 없다.
유네스코 등재 유산을 관리하는 기관이라면, 전승의 공정성·투명성·다양성을 보장하는 시스템으로 전면 개편해야 한다.
최숙녀 선생은 20년 넘게 정선아리랑에 헌신해 왔다. 그러나 그녀는 말한다. “저는 장학금에는 관심도 없어요. 돈 욕심이 있었으면 진작에 장사를 했겠죠.”
만약 장학금을 받게 된다 해도 전액 기부하겠다고 말할 만큼, 그녀의 마음은 오직 정선아리랑에 있다.
정선 5일장터와 여러 공연장에서 정성을 쏟아부었지만, 이수자는커녕 전수 장학생 과정조차 밟지 못했다는 사실은 그녀에게 큰 상처로 남았다.
그녀는 묻는다. “나보다 늦게 온 수강생들에게 왜 양보를 권유받아야 하나요?” 이 질문은 단순한 불만이 아니라, 20년의 헌신이 외면당한 사람의 절규다.
최숙녀 선생은 공연장에서 옛 정취를 그대로 재현한 소리꾼이었다. 아기를 등에 업고 소리하는 모습은 관객들에게 깊은 감동을 주었고, 정선아리랑의 원형을 가장 생생하게 보여준 장면이었다.
그녀는 한때 음식점을 운영했지만, 단체 손님 주문을 받아놓고도 공연 일정이 바뀌면 가장 먼저 공연장으로 달려갔다. 돈보다 소리를 우선순위에 둔, 진짜 소리꾼의 삶이었다.
20년을 바쳐도 장학생 선발에서 배제되고, 늦게 온 사람에게 양보를 요구받는 현실은 전수관 시스템이 진정한 헌신을 제대로 평가하지 못하고 있다는 강력한 증거다.
최숙녀 선생의 사례는 단순한 개인의 서운함이 아니라, 정선아리랑 전승 구조가 놓치고 있는 ‘진짜 소리꾼’의 가치를 보여준다.

우측 두번째-이자옥 선생
이자옥 선생은 2005년 민예총 초기 멤버로 활동하며, 동해에서 백두대간 해발 750m 백봉령을 굽이굽이 넘어 정선으로 향하는 길을 20년 넘게 반복했다.
그 험한 길을 넘다 두 번이나 대형 사고를 겪었지만, 정선아리랑을 향한 마음 하나로 다시 일어섰다. 그녀는 그때를 떠올리며 눈물을 글썽였다.
20년 동안 정선아리랑에 몸담았지만, 전수 장학생 기회조차 한 번도 받지 못했다.
그녀는 담담하게 말한다. “무슨 수입이 있겠어요. 돈 벌려고 소리하는 게 아니에요.”
정선아리랑이 처지고 서글프다는 일부의 말에 대해 그녀는 단호하게 반박한다. “가사마다 이유가 있어요. 사람들의 삶, 발자취, 꿈과 용기가 다 들어 있어요. 만여 개 가사가 있다는데 얼마나 다양하겠어요.”
20년 동안 장학생 기회를 받지 못했음에도, 그녀는 결국 동해에서 정선으로 거처를 옮겨 살았다. 정선아리랑과 함께한 세월을 버릴 수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마음속에는 여전히 지울 수 없는 상처가 남아 있다. 그녀는 말한다. “전수 장학생이 뭐 대단한 거냐고 말하는 사람도 있지만, 저는 20년을 기다렸어요. 무슨 사연이 있는지 모르지만 기회를 주지 않아요. 이게 차별인가 싶어 정선을 떠나고 싶을 때도 많아요. 그래도 언젠가는 좋은 날이 오겠거니 하고 살아요.”
마지막에 이자옥 선생은 이슬 맺힌 눈가를 손으로 훔치며 이 말을 남겼다. 그 모습은 정선아리랑을 지켜온 사람들의 고통과 희망이 뒤섞인 상징이었다.
좌-최숙녀, 손정자 선생
25년 세월을 정선아리랑과 함께한 그들에게
'이수자' 수여가 그렇게도 어려운가?
손정자 선생은 정선 조양강 끝 작은 주유소를 운영하며 19년 동안 정선아리랑에 삶을 걸어왔다.
어려운 형편 속에서도 시간·정성·물질적 후원을 아끼지 않았고, 정선 오일장뿐 아니라 사북·고한·신동·민둥산 장터까지 정선아리랑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달려갔다.
그녀는 말한다. “정선아리랑 귀신에게 홀렸다더니, 이제야 그 말이 이해돼요.”
그러나 두 번 강산이 변하는 세월 동안 소리를 해왔음에도, 전수 장학생 기회를 단 한 번도 받지 못했다.
그녀는 속으로 묻는다. “무슨 근거로, 무엇이 부족해서 기회를 주지 않는 건가요.” 하지만 결국 “내가 부족한가 보다”라며 속앓이를 하고 있다. 이 말은 제도 앞에서 개인이 스스로를 탓해야 하는 현실의 잔혹함을 보여준다.
강릉에서 작은 음식점을 운영하는 배연자 선생은 뛰어난 소리꾼으로 칭찬이 자자했던 인물이다.
언니 배귀녀 선생은 반평생을 정선아리랑에 바쳐 전수 조교까지 올랐지만, 거동이 불편해 더 이상 소리를 할 수 없게 되었다.
언니의 노후가 보장되지 않는 모습을 지켜본 배연자 선생은 정선아리랑에 헌신해도 돌아오는 것이 없다는 현실을 절감했다.
결국, 제도적 불합리함 때문에 정든 정선을 떠날 수밖에 없었다.
수십 년 함께한 정선아리랑의 혼을 떼어내는 일은 가슴을 찢는 일이었을 것이다.
이런 인재가 떠나는 모습을 보며, 시스템이 재능 있는 사람을 지켜내지 못하는 구조적 문제가 분명히 드러난다.
인구절벽 시대에 한 사람 한 사람이 소중한데, 정선아리랑에 ‘몰빵’한 사람들조차 떠나게 만드는 제도라면 반드시 고쳐야 한다.

이수자 이정희 선생과 함께 창작 안무를 선보이며 정선 오일장 공연의 ‘맛과 멋’을 끌어올린 장옥련 선생.
나이가 들어 몸이 불편해도 장터에 나타나면 후배들이 사비로 교통비를 챙겨줄 만큼 정선아리랑에 대한 애착이 깊은 인물이다.
그러나 그녀 역시 전수 장학생 기회를 받지 못했다.
그녀는 말한다. “이제 나이가 들었으니 그만하라는 건지… 그 서운함을 어떻게 말로 표현하겠어요.”
그리고 덧붙인다. “정선아리랑이 나를 버리는 게 아니라, 사람이… 제도가 그렇게 만드는 거예요.”
이 말은 정선아리랑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가장 아프게 하는 대목이다. 정선아리랑은 그들을 버리지 않았지만, 제도가 그들을 밀어냈다.

정선5일장을 빛낸 얼굴들 ( 우측 이정희, 장옥련, 배연자 선생)
대중가수는 노래를 잘하면 된다. 그러나 정선아리랑은 기교로 꾸미는 순간 본질이 훼손된다.
음정·박자를 양악기 기준으로 평가한다면, 우리 고유의 소리는 머지않아 단절될 것이다.
정선아리랑은 ‘잘 부르는 소리’가 아니라 삶을 담아내는 소리, 감정을 실어내는 소리, 사람의 숨결이 그대로 묻어나는 소리다.
정선 귤암리에서 조양강을 바라보며 평생을 소리해온 최승월 할머니는 누구에게도 배운 적 없는 소리꾼이다.
기교는 없고, 악보도 없고, 오직 가사마다 다른 감정을 실어내는 자연스러운 소리만 존재한다.
놀라운 것은, 김남기 선생과 만난 적도, 배운 적도 없는데도 그녀의 소리가 김남기 선생의 소리와 닮아 있었다는 점이다.
이것이 바로 정선아리랑이다. 배워서 흉내 내는 소리가 아니라, 삶 속에서 자연스럽게 피어나는 소리.
고종 황제 앞에서 판소리를 불러 통정대부가 된 이동백 선생의 소리를 악보로 옮길 수 있을까? 악기로 재현할 수 있을까? 답은 명확하다. 불가능하다.
이동백 선생이 새 소리를 목소리로 표현하면 실제 새들이 날아왔다는 유명한 일화가 있다. 이런 소리를 악보로 기록하는 순간, 소리의 생명력은 사라진다.
정선아리랑도 마찬가지다. 악보로 규정하는 순간, 본연의 아름다움은 잃어버린다.
정선아리랑을 대중가수처럼 꾸미고, 음정·박자를 양악 기준으로 평가하는 순간 정선아리랑은 정선아리랑이 아니게 된다. 정선아리랑은 사람의 삶, 감정, 역사, 숨결이 그대로 녹아 있는 소리다.
악보로 가두지 말아야 하고, 기교로 꾸미지 말아야 하고, ‘예쁜 소리’ 기준으로 평가해서도 안 된다.
정선아리랑은 사람이 만든 소리가 아니라, 사람이 살아온 이야기가 만든 소리이기 때문이다.
2018년 녹음실에서 악보대신 가사를 보며 소리를 창작중인 모습 - 김남기 선생
김남기 선생의 소리는 악보에 기대지 않는다. 그 소리는 기교가 아니라 혼이 울리는 소리, 정선아리랑이 지닌 원형의 매력 그 자체다.
그래서 정선아리랑은 ‘잘 부르는 소리’가 아니라 삶이 울리는 소리, 사람의 숨결이 그대로 담긴 소리다.
흔히 말하는 “우리 것이 좋은 것이야”라는 말에는 “우리 옛것이 좋은 것이야”라는 더 깊은 뜻이 숨어 있다. 정선아리랑은 그 옛것의 정수다. 기교로 꾸미지 않아도, 악보로 정리하지 않아도, 그 자체로 아름답고, 그 자체로 완전한 소리다.
오늘이 미래였던 20년 전, 장터에서 비를 맞으며 울려 퍼지던 그 소리, 아기를 업고 소리하던 그 모습, 삶과 소리가 하나였던 그 순간들.
그때의 정선아리랑은 꾸미지 않아도 깊었고, 설명하지 않아도 울림이 있었다.
그래서 바란다. 그때 그 소리, 그때 그 모습을 다시 재현해 주기를. 정선아리랑이 본래의 자리로 돌아오기를.
투데이스타
해덕 창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