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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운 겨울이 되어서야 소나무와 잣나무가 시들지 않음을 안다.
  • 편집국
  • 등록 2024-11-13 00:45:12
  • 수정 2026-04-11 13:46: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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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제 곧 시린 겨울을 맞이하는 우리들의 가슴에 따뜻한 울림을 주는 세한도

투데이스타 김달님 기자

'세한연후지송백지후조'

(한겨울 추운 날씨가 되어서야 소나무와 측백나무가 시들지 않음을 안다, 즉 사람은 고난을 겪을 때라야 비로소 그 지조의 일관성이나 인격의 고귀함 등이 드러날 수 있다는 뜻이다)


'세한연후 지송백지후조'라는 뜻이 담긴 세한도를 그린 김정희는 어린 시절부터 똑똑하기로 알려졌고 완당, 추사, 예당, 시암, 노과, 농장인 등 10여 개의 호가 있다고 전해진다. 

추사 김정희는 24세에 청나라에 가서 옹방강과 완원을 만나 학문을 논한 후 두 사람을 평생의 스승으로 삼았다. 특히 그의 호 완당은 스승 완원을 모시는 집이란 뜻을 가지고 있다. 

 

김정희는 안동 김씨가 권력을 쥐고 있었던 세도정치 시대에 김 문의 모함을 받아 제주도로 유배를 가게 되었다. 이 떄 그의 나이 55세였다.  집 둘레에는 가시가 있는 탱자나무 울타리를 쳐 한 발짝도 밖으로 나갈 수 없는 그야말로 최고의 중형인 절해고도 위리안치의 유배 생활동안 외로움은 이루 말할 수 없었을 것이다. 약 9년 동안의 외로운 제주 생활에서 김정희는 자신만의 글씨체를 완성하기도 했다. 그의 호를 따서 추사체를 완성한 것이다. 이 때에 제자 이상적이 청나라에서 귀힌 책들을 보내주기도 했다. 그 고마움에 보답하기 위해 세한도를 그려주었다.

   
김정희가 생을 마감하고 이상적의 사후에도 세한도는 수많은 손을 거치게 되었다.

이상적 사후에 민씨 일가로 넘어갔다가 경성제국대학의 중국 철학 교수로 고미술 수집가였던 후지츠카 치카시의 손에 들어갔다. 후지츠카는 완당의 서화나 그에 대한 자료를 매우 많이 소장하고 있었는데 태평양 전쟁 후 일본으로 세한도를 가져간 후지츠카를 찾아간 서예가 손재형이 그에게 간곡히 부탁하여 세한도를 양도받았다고 한다. 그런데 손재형이 세한도를 양도받은 지 석 달이 지나 1945년 3월, 도쿄 대공습으로 후지츠카의 서재가 모조리 불타버리면서 그가 수집한 완당의 수많은 작품들도 함께 사라졌다고 한다. 그야말로 기적처럼 살아남은 작품이라고 하겠다.

그렇게 일본에서 손재형은 세한도를 받았으나, 이후 정치에 투신하면서 가세가 기울어 재산을 처분하는 과정에서 세한도를 내놓았고, 해당 그림을 개성 출신의 갑부였던 석포 손세기가 인수했다. 이후 그림은 손세기의 아들인 손창근이 소장하고 있었다가 조건 없이 2020년 국립중앙박물관에 기증했다.

물기 없는 마른 붓에 진한 먹물을 묻혀 칼칼하게 표현한 세한도를 보면 혹독한 추운 겨울을 너무도 잘 표현해내었다는 점이 더욱 매력적이다. 9년 동안의 유배 동안 외로움이 뼛속까지 스며드는 것을 볼 수 있지만 한편으론 스승과 제자의 아름다운 우정이 소나무 두 그루와 나란히 함께하고 있는 측백나무 두 그루가 요즘처럼 어수선한 사회 현실과 곧 다가오는 추운 겨울을 생각하면 몹시 매서울 것 같은 우리들 가슴을 따뜻하게 적셔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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