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데이스타 특별 기고
“민중의 꽃으로 피어난 위대한 선구자” 정여립(鄭汝立) 재조명
조선 중기의 문신 정여립(鄭汝立)은 그의 주장과 행동은 여러 논란을 빚었다고 한다.
가장 논란의 중심이 된 것으로 왜구 침입을 막기 위해 군사단체를 직접 조직하여 만든 ‘대동계’다. 심지어 군사훈련까지 맡아 진행할 정도로 왜구 침입에 날카로운 반응을 보이자, 왜구 침입은 없을 것이라고 주장하던 서인(온건파)으로부터 심한 견제를 받기 시작했고 그 결과 강경파인 동인과 분열이 일어나게 되고 이어 송강 정철의 1천여명의 살상 관련, 남인과 북인으로 나뉘는 결과로 이어졌다. 임금(선조)에게 감히 ‘천하 공물’을 주장한 정여립은 선조와 온건파에 의해 요주의 인물 1호가 되어 언제 사약을 받을지 모르는 처지에 놓이게 되었다. “전하, 이 세상천지는 우리 모두(백성)의 것입니다. 어찌 세상의 주인이 따로 있겠습니까?” 나라의 주인인 임금 앞에서 `천하공물론`을 폈으니, 그의 목숨은 산목숨이 아니었다. 게다가 왜구(일본)의 침입을 막기 위해 군대를 만들고 군사훈련까지 지휘했으니, 정여립을 제거하려는 온건파로서는 ‘역모’로 엮을 수 있는 기회를 잡게 되었다. 이 젊은 혁명가의 주장을 선조가 조금이라도 긍정적으로 생각했다면 조선의 역사는 달라졌을 것이며 오늘 현재의 역사에도 그 영향을 줬을 것이라는 주장을 하는 학자도 있다.

조선 중기 문신 정여립(鄭汝立)을 이이(李珥)와 비교할 만큼 그의 사상이 독특하다고 할 수 있는데 동인(퇴계 이황의 제자들이 중심이 된 붕당)으로 활약하면서 이이, 성혼, 박 순 등을 비판하였고 그의 운명을 결정짓고 만 ‘천하공물론’에 이어 죽도(竹島)에서 서당을 짓고 양반부터 상민, 천민, 승려까지 불러들여 학문을 가르쳤다고 하여 죽도 선생으로 불리는 등 그 시대엔 혁명적 사상가였다면 이이(李珥)는 선조 시대의 문신으로 성리학자였다. 두 문신의 사상이 대립할 수밖에 없었지만, 정여립과 당시엔 중요한 정치적 역할을 했다고 볼 수 있다. 선조로부터 눈총받은 정여립에 비해 이이는 선조의 정치적 후원자로 이이의 사상을 중시했다. 두 인물은 각자 다른 시대적 맥락에서 활약했지만, 왜군을 방어하고 물리치기 위해 군대를 조직하고 훈련까지 지휘한 정황을 보태어 정여립을 ‘반란군 수괴’로 내몰린 것에 대해 반드시 신원해야 한다는 주장이 끊이지 않고 있다.
정여립(鄭汝立)의 사망설에 대해서도 정확히 확인할 수 없지만 1589년 황해도 관찰사 한준은 정여립 패거리들이 한강이 얼 때를 틈타 한양으로 진격해 반란을 일으키려 한다고 조정에 고발했고, 관련자들이 차례로 잡혀가자, 정여립은 죽도로 도망 후 관군에게 포위되자 자살한 것으로 역사는 기록하고 있는데 관찰사 한준은 정여립의 혁신적인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사회적 변화를 주도한다면서 반란군으로 몰아간 것은 정치적으로 희생당했음이 명명백백하다고 일부 역사학자들이 주장하고 있다.
정여립 기념사업회의 입장도 이와 다르지 않기 때문에 추모문화제를 통해 정여립의 삶과 업적을 재평가하고, 그의 역사적 위치를 올바르게 정립해야 할 때라고 주장하고 있다.

정여립 추모문화제를 통해 그의 삶과 업적을 기리고, 그의 가치와 가르침을 현대 사회에 전달해야 함은 물론 이를 통해 몇백 년 앞을 내다보는 정여립의 정치적 철학이 현대 사회에까지 이어져 사회적 변화를 끌어내야 한다면서, 선생의 출생지인 상관면 월암리를 기점으로 김제, 금산, 진안, 상전 등 역사의 숨결을 느낄 수 있는 순례길도 마련해야 하며 정여립 선생의 역모와 모반이라는 억울한 누명을 벗겨 우리 모두의 가슴에 선각자로 각인 될 수 있도록 사료를 정리, 영화, 드라마, 뮤지컬 등으로 세상에 널리 알리는 등 정여립 선생의 혼이 서린 완주군ㆍ전주시ㆍ김제시ㆍ진안군ㆍ장수군의 5개 지자체와 함께 "정여립 선생의 대동사상ㆍ평등 세상 프로젝트"를 전북 발전 국책사업으로 추진해야 한다.
특별기고
사)정여립기념사업회 이사 / 총괄본부장
정진권
행사 일정
| 제3회 정여립 추모문화제 행사 일정 및 장소 |
♣ 제3회 정여립 추모제 일정 : 2024년 9월 28일(토), 또는 10월 4일(금)
♣ 장소 : 상관 생활체육공원, 정여립 공원(상관면 월암리), 완주 상관면 행정 복지타운
♣ 현장답사 : 진안 죽도, 장수 천반산, 김제금산
| 정여립 추모문화제 추진 프로그램 개요 |
♣ 정여립의 생애와 업적을 기리는 춤과 음악 추모 공연
♣ 정여립의 생애와 업적을 담은 사진, 그림, 문서 등의 전시
♣ 정여립의 생애와 업적에 대한 강연
♣ 정여립에 대한 토론과 대화의 장을 마련
♣ 정여립의 생애와 업적을 담은 책 출간 기념회
♣ 정여립을 기리는 시와 노래와 낭송회
♣ 정여립을 기리는 글쓰기 및 그림 그리기 대회
♣ 정여립의 생애와 업적을 담은 동영상 상영회
♣ 정여립의 생애와 업적을 담은 다큐멘터리 방송
♣ 정여립을 기리는 기념비 건립 및 제막식
| 정여립 추모문화제 진행 순서 |
<1부> 학술 세미나
‘정여립의 역사적 재조명’,‘정여립과 기축옥사’,‘정여립 인물 탐색’
‘정여립 최초 공화주의자’
<2부> 추모문화제
문화공연
<3부> 촛불 추모의식 및 횃불 행진
‣ 촛불 추모 의식 후 특설무대에서 정여립 공원까지
♣ 역사적 인식의 제고로 정여립의 삶과 업적에 대한 대중의 인식을 높이고, 그의 역사적 위치를 재조명함으로써 역사적 이해도를 높일 수 있다.
♣ 추모문화제를 통해 정여립에 대한 이야기와 경험을 공유하고, 다양한 세대와 계층 간의 소통과 이해를 도모하는 사회적 소통의 장이 된다.
♣ 문화제를 통해 예술, 문학, 음악 등 다양한 예술 분야의 창작과 공연을 지원하고, 문화 예술의 발전과 다양성을 증진 시킬 수 있다.
♣ 추모문화제를 통해 지역 사회의 관심과 참여를 유도하고, 지역 경제 활성화와 지역 문화 발전에 이바지할 수 있다.
♣ 추모문화제는 다양한 사회 구성원들이 모여 정여립의 가치와 업적을 기리는 자리로 사회적 통합과 연대감을 강화할 수 있다.
취재 편집 박성운 기자